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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20241020)를 즐기다국내여행/국내여행 2025. 1. 12. 11:28
어제 산행을 마치고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인근에 있는 관광을 하려고 합니다.
장소는 벽골제...
내용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저수지이다. 역사적 연혁에 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흘해왕 21년조에 ‘시개벽골지안장일천팔백보(始開碧骨池岸長一千八百步)’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 지역이 백제의 영토였으므로 후세 사가들이 신라기년(新羅紀年)으로 고쳐 신라기(新羅紀) 속에 삽입한 것으로 본다면 백제의 11대 비류왕 27년(330)에 축조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 뒤 790년(원성왕 6)에 증축한 사실이 있었고,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현종 때와 인종 21년(1143)에 수축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에 의하면 인종 24년(1146)에 왕의 건강이 위중해지자 무당의 말을 따라 내시(內侍)를 김제로 보내 벽골제의 제방을 트게 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 1415년(태종 15)에 다시 축조하였으나, 이익이 적고 폐단이 많았기 때문에 폐지하고 말았다.
현재 그 유적은 포교리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월승리에 이르는 평지에 일직선으로 약 3㎞에 달하는 제방이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1925년에 동진(東津) 수리조합에서 이 제방을 관개용 기간수로(基幹水路)로 개조하여 이용함으로써 그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다.
이 제방에 부수된 시설로는 3개 소에 수문지(水門址)가 있으며, 거대한 돌기둥들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실려 있는 벽골제중수비문에 보면 두 개의 수문이 더 있었다고 한다.
1975년 수문지 2개 소에 대한 발굴조사에 의하면 제방의 높이는 약 4.3m이고, 윗변의 너비가 7.5m, 그리고 밑변 너비는 17.5m의 규모로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문의 너비는 4.2m로서 여기에 사용된 돌기둥의 높이는 5.5m이며, 1개의 무게는 약 8t에 달하고 있다. 수문 외부에는 호안석(護岸石) 등이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다.
한편, 저수지 수면의 만수 때 이 제방을 구축함으로써 확보되는 점유 총 면적은 37㎢, 즉 1120만 평의 방대한 지역에 달한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이러한 토목공사는 정밀도가 매우 높은 수준측정법(水準測定法)을 전제로 해서 비로소 가능한 것으로, 이는 당시 토목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 제방과 함께 이곳에 건립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김제벽골제비는 1963년에 일괄해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100.daum.net
삼국시대에 조성된 이런곳이...
너무도 넓고 길고... 아무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저수지 때문에 해택을 받았을까 하며 한동안 거닐어 봅니다.
조금 아쉬운게 벽골제 제방을 전부 걸을수 있게 조성이 되어 있지 않은것은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그래도 공원이라고 해야 할지...
과거의 모습을 재현한건지...
들판에 있는 코스모스와... 제방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을 한껏 가졌던 하루입니다.
위와 같은 수문이 5개 있었다는데...
트레킹 코스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전부를 걸을 수 없었습니다.
넓은 평야에 쌀농사보다는 콩농사를 짓는 부분도 많고...
쌀가격이 않좋아서 직불금이 많은 콩을 짓는다는데...
많은 것을 느끼게 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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