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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던 어린이가 늙어가면서 지나가는 세월을 정리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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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업사지(20200619)를 즐기다
    국내여행/국내여행 2020. 6. 23. 19:21

    안성의 죽산에서 일죽으로 가다보면 나타나는 이정표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뒤쪽으로는 죽주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

     

    과거에는 엄청 커다란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

    맑은 날에 봉업사지의 당간지주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리고 뒤쪽에 자리한 석탑을 확인하는데 이건 보물이네...

     

    오늘 또다시 보물을 하나 건진 날이다.

    여기 봉업사에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곳에서 노다지를 캔 느낌의 하루...

     

    봉업사지와 여기에 있는 석탑을 한동안 즐긴 좋은 날이다.

     

     

    안성 봉업사지(경기도 기념물 제189호)

     

    이 사지는 죽산면에서 일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넓은 뜰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봉업사지의 사명(寺名)이 확인된 것은 1966년 경지정리작업 중 출토된 향완과 반자에 새겨진 명문 때문이다.향완과 반자의 발견으로 고려사에 나오는 죽주의 봉업사가 현재의 봉업사지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공민왕이 1363년(공민왕 12년) 죽주에 이르러 봉업사에서 태조의 진영을 알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봉업사는 절 이름 그대로 나라를 창업한 것을 기념하여 창건된 호국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사찰의 창건은 통일신라시기로 올라가며 창건 당시의 사명은 화차사(華次寺)였음이 1997년 발굴조사 결과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명문기와를 통해 확인되었다.

    봉업사는 진전사원으로 고려시대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사찰이었다.

    현재 봉업사지에 남아있는 유물로는 죽산리 오층석탑(보물 435호), 죽산리 당간지주(유형문화재 89호)등이 있으며, 칠장사로 옮겨진 안성 봉업사지 석불입상 등이 있다.

    봉업사는 경기도 박물관에 의해 3차례에 걸쳐 발굴이 진행된 바 있다.

    봉업사에 대한 1, 2차 발굴은 1997년과 2000년에 실시되었으며, 당시 峻豊銘 기와 등 명문기와와 막새, 청자, 중국 자기들이 다량으로 출토된 바 있다.

     

    봉업사지 오층석탑(보물 제435호)

     

    지금은 주변이 경작지로 변한 봉업사(奉業寺)의 옛터에 위치하고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하나로 짠 두툼한 널돌 위에 올려 완성하였는데, 이 때의 석재가 두툼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기단 위의 탑신은 1층 몸돌만 4장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는 한 돌로 구성하였다. 각 층의 네 모서리에는 폭이 좁은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 남쪽면 중앙에는 작은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만들어 놓았으나 모양만 새기는 형식에 그치고 말았다. 지붕돌은 얇고 추녀는 거의 수평을 이루었으며 끝에서의 치켜올림도 미미하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도 적당하지 못하고, 각 부의 조각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석재의 조합 방식은 우수하나, 기단에 새긴 조각이 형식화 되는 점 등에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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